티스토리 뷰

인간실격

최우퇘지 2017. 6. 6. 19:08

에곤 쉴레, 꽈리 열매가 있는 자화상


 그냥 표지에 있는 그림이 마음에 들어서 산, 200 페이지가 채 안 되는 책인데 읽는데 참 오래도 걸렸다. 그림에 끌렸던 것에 비해 내용은 그다지 내 손이 가지 않게 했고 꾸역꾸역 읽어냈다. 오래도 걸렸다 정말.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 라며 시작하는 이 소설은 한껏 퇴폐적이고 우울하다.


'제가 가진 행복이라는 개념과 이 세상 사람들의 행복이라는 개념이 전혀다를지도 모른다는 불안. 저는 그 불안 때문에 밤이면 밤마다 신음하고, 거의 발광할 뻔한 적도 있었습니다. 저는 과연 행복한 걸까요? 저는 어릴 때부터 정말이지 자주 참 행운아다, 라는 말을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저 자신은 언제나 지옥 가운데서 사는 느낌이었고, 오히려 저더러 행복하다고 하는 사람들 쪽이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더 안락해 보였습니다. 나한테는 재난 덩어리가 열 개 있는데, 그중 한 개라도 이웃 사람이 짊어지게 되면 그것만으로도 그 사람에게는 충분히 치명타가 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한 일도 있습니다. 즉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웃 사람들의 괴로움의 성질과 정도라는 것이 전혀 짐작이 가지 않았던 것입니다. 실용적인 괴로움, 그저 밥만 먹을 수 있으면 그것으로 해결되는 괴로움. 그러나 그 괴로움이야말로 제일 지독한 고통이며, 제가 지니고 있는 열 개의 재난 따위는 상대도 안 될 만큼 처참한 아비지옥일지도 모릅니다. 그건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치고는 자살도 하지 않고 미치지도 않고 정치를 논하며 절망도 하지 않고 좌절하지도 않고 살기 위한 투쟁을 잘도 계속하고 있다. 괴롭지 않은 게 아닐까? 철저한 이기주의자가 되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확신하고 한번도 자기 자신에게 회의를 느낀 적이 없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편하겠지. 하긴 인간이란 전부 다 그런거고 또 그러면 만점인 게 아닐까. 모르겠다... 밤에는 푹 자고 아침에는 상쾌할까? 어떤 꿈을 꿀까? 길을 걸으면서 무얼 생각할까? 돈? 설마 그것만은 아니겠지. 인간은 먹기 위해 산다는 말은 들은 적이 있지만 돈 때문에 산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어. 아닐 거야. 그러나 어쩌면... 아니, 그것도 알 수 없지...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익살이었습니다.'


 작중 화자 요조는 어릴 적부터 다른 사람과 다른 걸 깨닫는다. 자신이 다르다는 것과 그로 인해 오는 불안을 어릴 때부터 느끼고 많은 생각을 한다. 내키지는 않지만 여기서 나와 선명하진 않은 공통점을 찾게 된다. 나 또한 남들과 조금 다르다고 생각한다. 콕 집어 말할 수는 없고, 결코 내가 틀리거나 혹은 더 나은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렇게 믿고 싶다. 하지만 확실히 말하건대 여러 다른 사람들과 조금 다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의 다름에 불만을 갖거나 불평하진 않았는데, 취직을 하고 나서는 조금 느낀 바가 많았다. 남들과 다름은 불편함으로 다가올 수 있음을 극명하게 깨달았다. 요조는 어릴 때 그에 대한 방어기재로 '익살'을 선택한다. 자신의 진짜 모습을 감추고 일부러 익살스럽게 행동하는 것이다. 나한텐 그런 방어기재도 없어 적잖이 당황했다.


 신입사원 연수를 받을 때, 이름 모를 성격테스트 따위를 받은 적이 있다. 그 테스트의 결과에 의하면, 나의 참 모습과 남을 대할 때의 모습이 다르다는 것이었다.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뭐 그게 나쁘다고 말하고 싶진 않지만, 거짓된 모습으로 남들을 대한다는건 즉 내게 부담이 온다는 말이다. 여기서 자신없어지는 부분은, 나도 나의 참 모습이 뭔지 확실하게 모르겠다는 것이다. 뭐가 진짜 나일까? 혹은 그것이 내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은 아닐까.


 뭐 이런 크게 영양가 없는 생각들로 가끔 머리속이 꽉 찰 때가 있다. 답을 내릴 방법은 없다.


 나는 크로스핏이나 러닝같은 운동을 좋아한다. 흑인음악을 좋아하고, 예술을 동경한다. 크로스핏을 왜 해? 혼자 달리면 뭐가 좋아? 예술따위 아무 소용 없어. 따위의 말을 들으면 나는 할 말과 앞으로 그 공동체에 어울릴 자신이 없어진다.  


 '대가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을 주관에 의해 아름답게 창조하고, 혹은 추악한 것에 구토를 느끼면서도 그에 대한 흥미를 감추지 않고 표현하는 희열에 잠겼던 것입니다. 즉 남이 어떻게 생각하든 조금도 상관하지 않는다는 원초적인 비법을 다케이치한테서 전수받은 저는 예의 여자 손님들 몰래 조금씩 자화상 제작에 착수했습니다.'


 그래서 나도 아돈깁어뻑 하고 싶지만, 그게 참 쉽지 않다. 


'아아, 인간은 서로를 전혀 모릅니다. 완전히 잘못 알고 있으면서도 둘도 없는 친구라고 평생 믿고 지내다가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상대방이 죽으면 울면서 조사 따위를 읽는 건 아닐까요.'


 완벽하게 알 수 없음은 분명하거니와 우리 모두 같을 수는 없다. 그러니 다름을 인정할 수 있음을 좋겠다. 나부터 그런 사람이 되야할 것이다. 


 '"이봐 이건 칼모틴이 아니야. 헤모노틴이지." 그렇게 말하고는 후후 웃어버렸습니다. 아무래도 '폐인'이란 단어는 희극 명사인 것 같습니다. 잠들려고 먹은 것이 설사약이고, 게다가 그 설사약 이름은 헤모노틴이라니. 지금 저에게는 행복도 불행도 없습니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는 것. 제가 지금까지 아비규환으로 살아온 소위 '인간'의 세계에서 단 한 가지 진리처럼 느껴지는 것은 그것뿐입니다. 모든 것은 그저 지나갈 뿐입니다. 저는 올해로 스물일곱이 되었습니다. 백발이 눈에 띄게 늘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흔 살 이상으로 봅니다.'


 시간이 무서우리만치 빠르게 지나가고 있다. 나는 젊다 못 해 어린데 뭐가 문제냐? 하던 이십대 초반의 최우태도 아니거니와, 존나 쎄게 세월에게 뚜드려 맞고 있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좋을것인가? 

'' 카테고리의 다른 글

파리대왕  (0) 2018.06.06
신경끄기의 기술  (0) 2018.04.02
난생처음 재테크  (0) 2018.04.02
마음 - 나쓰메 소세키  (0) 2018.02.19
노르웨이의 숲  (0) 2017.07.09
댓글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
TAG
more
«   2025/09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