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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의 여자

최우퇘지 2020. 10. 4. 00:26

 

● 일 년 내내 매달려 있기만을 강요하는 현실의 답답함에 비하면 이 얼마나 신선한가. 

 물론 모래는 생존에 적합하지 않다. 그렇다면 정착은 과연 생존에 절대적으로 불가결한 것인가. 정착을 부득불 고집하기 때문에 저 끔찍스런 경쟁이 시작되는 것은 아닐까? 만약 정착을 포기하고 모래의 유동에 몸을 맡긴다면 경쟁도 성립하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사막에도 꽃은 피고 벌레와 짐승도 산다. 강한 적응력을 이용하여 경쟁권 밖으로 벗어난 생물들이다. 예컨대 그의 길앞잡이속처럼... 

 

○ 사막으로 나가면 어떤 삶이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다만 요즘 드는 생각은, 모래든 흙이든 콘크리트 위든 주어진 환경에 만족할 줄 아는게 일단 좋다. 그러니, 사막으로 나가는 삶 또한 좋을 수 있다. 

 

● 오호! 이거야 놀랍군요, 선생이 드디어 뭘 쓰실 결심을 하셨단 말이죠. 역시 체험이 최고로군요. 피부에 자극을 주지 않으면 지렁이도 제 몫을 못 한다고 하니 말이죠.

 

○ 직접 해봐야한다. 해봐야한다. 버거움에 허덕여도, 어쩔 수 있는가. 나아지겠지. 해봐야 안다. 

 

● 그러나 겁을 먹어서는 안 된다. 바다에 표류하는 사람이 기아와 갈증으로 쓰러지는 것은 생리적인 결핍보다 오히려 결핍에 대한 공포 탓이라고 한다. 졌다고 생각하면 그때부터 패배가 시작되는 것이다. 코끝에서 땀이 떨어졌다. 또 몇 분의 1cc 수분을 빼앗겼다고 신경을 쓰는 것 자체가 적의 술수에 빠져들었다는 것이다. 

 

○ ㅆ비ㅏㄹ 덤벼라

 

●  '인간에게는 적재적소란 것이 있습니다. 자기에게 맞는 일거리를 얻지 못하면 모처럼의 협력 의지도 꺾이고 마는 법이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이렇게 위험한 줄다리기를 하지 않아도, 좀 더 정당하게 나를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을 텐데요.' 

...

'미쳤어. 제정신이 아니야. 모래 퍼내는 것쯤, 훈련만 받으면 원숭이도 할 수 있는 일이잖아. 난 좀 더, 나은 일을 할 수 있다고. 인간에게는 자기가 갖고 있는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의무가 있단 말이야'

 

○ 적재적소란 것이 있기야 하겠지. 제 모양에 완벽하게 맞춰 들어가 제 할 일을 다 하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엄청 행복한 사람들인 거다. 뭐 모양이 조금 달라도, 맞는 모양이라고 생각하면 될 일일까 싶지만 사실 그건 자기 위로일 뿐.

모래를 퍼나르는 일은 첫 직장 순회진단팀에서의 생활이 생각났다. 그 생활은 반년을 채우지 못했다.  

 

● 열 잔의 물이 사탕이라면, 한 잔의 물은 차라리 채찍에 가깝다. 

 

○ 극히 공감하는 바이고, 많은 사람이 다이어트에 실패하는 이유를 가장 잘 대변하는 한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 과연 노동에는, 목적지 없이도 여전히 도망쳐 가는 시간을 견디게 하는, 인간의 기댈 언덕 같은 것이 있는 모양이다. 언제였던가, 뫼비우스의 띠가 같이 가자고 하여 무슨 강연을 들으러 간 적이 있다. ... 그 아래서 강사가 이런 말을 하였다. '노동을 극복하는 길은 노동을 통해서만 찾을 수 있습니다. 노동 자체에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노동으로 노동을 극복하는... 그 자기부정의 에너지야말로 진정한 노동의 가치입니다.'

 

○ 로동이란 무엇인가. 좋아하는 것을 로동으로 삼는 자들의 생은 어떠할까. 나는 무엇을 좋아할까. 지금 내가 하는 일은 로동이라 할 수 있는 것인가. 

 

● Got a one way ticket to the blues, woo woo- 부르고 싶으면 얼마든지 불러. 실제로 편도표를 손에 쥔 사람은 절대로 이런 식으로 노래하지 않는 법이다. 편도표밖에 갖고 있지 않은 인종들의 신발 뒷굽은 자갈만 밟아도 금이 갈 만큼 닳아빠져 있다. 더 이상 걸을 수가 없다. 그들이 노래하고 싶은 것은 왕복표 블루스다. 편도표란 어제와 오늘이, 오늘과 내일이 서로 이어지지 않는 맥락 없는 생활을 듯한다. 그렇게 상처투성이 편도표를 손에 쥐고서도 콧노래를 부를 수 있는 것은 언젠가는 왕복표를 거머쥘 수 있는 사람에 한한다. 그렇기에 돌아오는 표를 잃어버리거나 도둑맞지 않도록, 죽어라 주식을 사고 생명보험에 들고 노동조합과 상사들에게 앞뒤가 안 맞는 거짓말을 해대는 것이다. 목욕탕의 하수구나 변기 구멍에서 피어오르는, 절망에 차 도움을 구하는 편도파들의 아비규환을 듣지 않기 위해 텔레비전의 볼륨을 높이고 열심히 편도표 블루스를 흥얼거리는 것이다. 

 

○ 돌아오는 표가 중요하긴 한가보다. 나 또한 그렇겠지. 주식투자 신중하게, 열심히, 잘 해야 돌아오는 표를 사는 기반이 될거에여,, 

 

● 지상으로 올라가면, 모든 것은 추억이라는 수첩 사이에서 말린 꽃이 될 것이다. 독초든 육식 식물이든, 엷고 반투명한 한 장이 꽃잎이 되어, 거실에서 녹차를 마시면서 전등빛에 비춰보며 늘어놓는 경험담의 양념이 된다. 

 

○ 지상으로 올라가면 말이다. 

 

● 불현듯, 새벽빛 슬픔이 북받친다. 서로 상처를 핥아주는 것도 좋겠지. 그러나 영원히 낫지 않을 상처를 영원히 핥고만 있는다면, 끝내는 혓바닥이 마모되어 버리지 않을까?

 '납득이 안 갔어. 어차피 인생이란 거 일일이 납득하면서 살아가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지만, 저 생활과 이 생활이 있는데, 저쪽이 조금 낫게 보이기도 하고. 이대로 살아간다면, 그래서 어쩔 거냐는 생각이 가장 견딜 수 없어. 어떤 생활이든 해답이야 없을 게 뻔하지만. 뭐 조금이라도 마음을 달래줄 수 있는 것이 많은 쪽이 왠지 좋을 듯한 기분이 들거든.'

 

○ 이직 준비를 할 때도, 서울에 가면 만사형통일 것이란 생각은 한 적 없다. 어느 정도는 예상한 대로이고, 내 선택에 대해서는 후회가 없다.

 

● 딱히 서둘러 도망칠 필요는 없다. 지금, 그의 손에 쥐어져 있는 왕복표는 목적지도 돌아갈 곳도, 본인이 마음대로 써넣을 수 있는 공백이다. 그리고 그의 마음은 유수 장치에 대해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은 욕망으로 터질 듯하다. 털어놓는다면, 이 부락 사람들만큼 좋은 청중은 없다. 오늘이 아니면, 아마 내일, 남자는 누군가를 붙들고 털어놓고 있을 것이다. 

 도주 수단은, 그 다음날 생각해도 무방하다.

 

○ 띠용-한 결말. 아주 좋은 결말이라고 생각했다. 

 

● <해설> 그러나 이 때 '여기'란 모래 구멍 속 세계를 뜻하지 않는다. '여기'는 그 안에 있으면서 밖을 동경하고, 동경을 찾아 안을 버리면 그 밖이 다시 안이 되는 공간, 즉 뫼비우스의 띠처럼 안과 밖이 없는 공간이다. 

 따라서 모래로 양분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던 이 세상과 모래 구멍 속 세계는 실은 한 공간의 서로 다른 모습이며, 인간은 다른 세계를 꿈 꾸느라 바로 여기가 다른 세계임을 자각하지 못하는 절대적 모순을 사는, 그리하여 늘 몸부림치지 않을 수 없는 존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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